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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1급 부광자동차서비스 박형배 대표, ‘고집·정직·성공의 상관관계’

기사승인 2020.07.10  15: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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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0일, 정직을 강조하던 박형배 대표의 1급 부광자동차서비스가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직원 6명으로 시작해 2년 넘게 적자를 기록했다. 숨이 막혀왔다.

박 대표는 부광을 운영하기 전 한·미, 한·일 합작 회사생활을 했었다. 무슨 일이든 열정적으로 하는 것을 좋아했던 박 대표는 독학으로 일본어를 공부했고, 영어는 회사에서 아침 6시에 한 시간 강의를 해주는 걸 꾸준히 임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 일이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회의감이 들었고 관두고 귀농을 준비하려 했다.

하지만 4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귀농을 하기엔 너무 빠르다 싶은 찰나에, 아는 분이 지식 없이도 할 수 있는 사업이 있다며 자동차 정비 사업을 추천해 줘 아무것도 모른 상태로 정비업을 시작하게 됐다. 가족들의 반대도 심했다. 하지만 앞만 보고 추진했다. 무작정 뛰어들었기에 처음 2년간은 정말 말 그대로 엄청난 고생을 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박 대표는 2010년 하반기, 정비관련 책을 사서 공부를 하고 인터넷 강의를 있는 대로 찾아서 들었다. 그리고 마케팅을 직접 하기로 마음을 먹고 무작정 KB손해보험의 문을 두드렸다. 일감을 달라고 했다. 겁 없이 덤비는 박 대표의 모습 때문이었는지 보험회사에서도 흔쾌히 받아들였고, 박 대표는 보험사에서 주최하는 교육도 열심히 받았다.

또 외제차가 승산이 있을 거란 판단에 국내차 뿐만 아니라 외제차도 열심히 연구하고 노력했다.

2010년 당시 오래된 외제차는 다룰 수 있는 공업사가 인천엔 부평 한 곳 밖에 없었는데, 박 대표는 그 틈새를 노렸고, 외제차를 정비하고 부평·계양구 쪽 보험 건을 안정적으로 수급받으면서 점점 매출이 오르기 시작, 흑자로 올라섰다.

현재 부광자동차서비스는 삼성손해·현대해상·DB손해·KB손해 보험업체와 제휴를 맺고 상생하고 있다.

박 대표는 보험사에서 교육을 받을 당시 느낀 점이 많았다고 말한다.

KB손해보험 해외연수로 일본 자동차 기술 연구소를 방문했었는데, 교육을 받으면서 일본의 자동차 사고 처리과정을 직접 목격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박 대표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도쿄시내에서 2시간가량을 무작정 기다렸다. 사고가 나길 바란 건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사고가 발생했고, 사고가 나자 근처 지구대에서 나와 바리케이드를 치고 주위 차들을 서행시킨 뒤, 사고 난 당사자들을 구급차에 먼저 보냈다.

우리나라처럼 서로의 잘못을 따지는 시시비비도 없었고, 어디서 어떻게 알고 왔는지 모를 견인차도 보험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지구대가 사고 처리를 다 마친 후에야 먼발치서 대기 중이던 보험회사 관계자가 다가와 경찰에게 사고 상황에 대한 자초지종을 듣고 인수인계를 받는 모습이 보였다. 신선했다. 우리나라는 정반대의 모습이 아닌가.

또 일본 일부 학교에는 교통안전이 교과과정에 있다며, 박 대표는 이런 체계적인 시스템이 부럽다고 강조한다.

박 대표는 우리나라도 교통문화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생각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직 부족함은 많은 것 같다는 박 대표다. 그는 후세를 위해서라도 우리 어른들이 교통질서와 법규를 잘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토로했다.

 

‘적정한 가격’으로 ‘적정한 수리’… 단, ‘최고급 제품’으로 ‘고품질 서비스’

 

박 대표는 항상 ‘적정한 가격’으로 ‘적정한 수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비를 하면 500원, 130원짜리 부품기록도 다 남겨서 고객이 어떤 수리를 했는지 알 수 있어 1년 내 AS도 무리 없이 진행하고 있다.

또 박 대표는 항상 고품질 서비스를 강조한다. 페인트, 오일 등의 상품은 항상 고급제품으로 사용하는데 이것이 고객들과의 ‘신뢰와 믿음’이라고 강조하는 그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수리비나 부품비가 만 원이 넘지 않는 건 무상으로 서비스를 해왔는데, 다른 카센터나 공업사에선 엄연히 비용을 받고 있는 부분이었기에 항의가 많이 들어왔다고 했다. 정비업 바닥을 왜 흐리고 다니냐는 볼멘소리도 엄청 많이 들었다는 박 대표다.

박 대표는 펑크 수리나 오일 보충, 전구 교환 등 크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는 수리·공임은 지역 주민들에게는 서비스 차원으로 제공하고 싶을 뿐이었다고 말한다.

아무리 서비스라 해도 부담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비용으로 환산하면 한 달에 80~130만 원 정도 고객들에게 서비스가 가는 것인데 일 년이면 1300만 원이 넘는 금액이니 그리 적지는 않은 금액이다. 하지만 고객들이 고마워하고 수리·공임비에 대한 걱정 없이 다시 찾아와 주시니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하는 그다. 지금은 우리 ‘부광시스템’을 다른 공업사나 카센터에서도 인정해주시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멋쩍게 웃었다.

이런 박 대표이기에 인천시자동차사정비사업조합 부평·계양정비조합에 가면 그는 한 마디로 ‘외계인’이었단다. ‘이단아·별종·달나라 사람’ 별 말을 다 들었다고.

이뿐만 아니라 박 대표는 항상 고객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대접하기 위해 1년에 신장비를 구비하는 데에 쓰는 금액만 1억 정도, 연매출에 5%는 장비에 투자하고 있다. 새로운 장비가 나오면 항상 구비를 하고 사용을 하려는 편이란다.

이런 그의 마음가짐이 고객들에게도 그대로 통한 걸까. 대를 이어서 오시는 분들, 주변 지인들까지 추천해 주셔서 계속 단골로 오시는 분들을 보면 정말 뿌듯하다는 박 대표다. 아버지에 이어 그 아들이, 며느리가, 며느리의 지인이, 세대를 넘나드는 단골들의 사랑을 보고 있자면 항상 마음속에 새기고 있는 정직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정직이 바탕이 됐기에 고객들의 신뢰와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 번은 완도에 사시는 할아버지가 서울에 일을 보러 오셨다가 외곽순환도로에서 추돌사고가 나서 부광에 차가 입고된 적이 있다고 박 대표는 그 때를 회상했다.

할아버지는 완도로 바로 가셔야 하는 상황이고 차 수리도 10일 정도 걸리는 파손이라 차를 맡기고 어르신은 완도로 귀가하셨다. 차 수리가 끝나고 직원이 직접 차를 완도로 갖다 드렸는데 직원이 어르신에게 아주 귀한 대접을 받고 왔다고, 정말 고맙다고 용돈까지 주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아버지가 생각나 가슴이 뭉클했었다고 말하는 박 대표.

이런 박 대표의 옆에는 부광이 문을 열고 현재까지 13년 째 든든하게 버팀목이 돼 주고 있는 공장장이 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번도 서로 큰소리를 내고 다투거나 한 적 없는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다. 박 대표는 그 긴 세월 동안 나를 믿고 함께 해줘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고 웃음 지었다. 공장장을 많이 믿고 의지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는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며 ‘정직함이 생명’이라는 모토를 갖고 지금까지 왔다고 강조한다. 직원들도 걱정 없이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항상 얘기를 들어주려 노력하고 서포트해주려 하고 있는데 직원들이 맘에 들어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웃음).

박 대표는 직원들 연령대도 젊은 편이고, 외제차에 대한 지식도 많은 편이라 앞으로 외제차 비중을 높이고 싶다고 했다. 현재는 국산차가 80%, 외제차가 20%인데 40% 정도는 외제차를 정비하고 싶다고.

박 대표는 정비업은 무한한 성장 가능성이 있는 업종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10년 안에 정비업은 판도가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며, 머지않은 미래엔 친환경 자동차인 전기·수소차가 각광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초경량 배터리에 관한 기술이 떠오를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되면 엔진·미션·소음기 등의 동력전달장치 쪽 일자리가 사라지게 되니 문제라며 미간을 찌푸리기도 했다. 또 우리나라는 아직 전기·수소차에 대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걱정이 된다고.

전기차 같은 경우 인천에서 사고가 나거나 고장이 나면 전기차를 수리·정비할 수 있는 거점이 없어서 서울로 가야 한단다. 국가에서 전기차 수리·정비가 가능하다는 지정을 해주지 않으면 전기차를 수리하고 테스트할 수 있는 장비를 구입할 수가 없어, 전기차는 현재 일반 공업사나 카센터에서는 수리가 불가하다고. 국토교통부에 지역거점을 만들자는 제안은 올라가 있는 상태라고 했다.

박 대표는 바쁜 와중에 머리도 식히고 힐링도 할 겸 취미로 분재와 골동품 수집을 하고 있다. 분재는 22년 째 하고 있고 골동품도 10여 년 정도 됐다는 박 대표는 분재 700여 개, 골동품 1000여 점 정도가 있다며 수줍어했다. 나중에 아이들을 위한 개인 박물관을 작게 열고 싶다고.

현재 60의 나이인 박 대표는 일은 65세까지 하고 싶다고 말한다. 5년 열심히 일하고 그 다음에는 부광을 운영하기 전 하려했던 귀촌을 해서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다는데.

일에 대한 열정과 고집 그리고 정직과 무모함이 현재의 ‘부광 박형배’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박정임 기자 ji860302@naver.com

<저작권자 © 인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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