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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김현, 시인이자 작사가·가수로 시구와 노랫말에 “인생을 풀다”

기사승인 2021.01.29  11:3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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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누구나 고향에 대한 향수로 가슴이 먹먹하고 그리움으로 가득 찰 때가 있다. 이런 고향을 항상 잊지 않고,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매사에 임하는 가수가 있다. 그는 시구와 노랫말로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가슴을 적신다.

행동과 말투에서 전북 고창이 고스란히 묻어 나오는 “고창스러운, 고창다운, 고창같은” 작사가이자 시인, 가수 김현을 만나 얘기를 나눠봤다.

Q. ‘김현’은 어떤 사람?

A. 평생 노래만 하고 살아서 제 인생을 논할 때 노래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제 본명은 김영종으로 1962년 고창에서 태어나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에 전북 고창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작사가와 가수, 시인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극단에 입단, 그때부터 저 김현 자체에서 풍기는 예술의 끼를 발산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Q. 노래를 하게 된 계기?

A. 노래는 24살 때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야간업소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우연히 기회가 닿았죠.

신학대학 시절에 키보드 연주를 하는 친구가 천안의 한 나이트클럽 무대에 올랐었는데 그 친구가 저를 가리키며 저 친구도 노래를 잘한다고 연주자에게 얘기를 했고, 연주자는 무대에 오르면 하루에 만 원씩을 줄테니 제게 노래를 하라고 했어요.

그렇게 무대에 올랐고 밴드 앞에서 처음에 조용필 ‘자존심’을 불렀는데 반응이 좋았지요.

원래 예술 쪽으로 끼가 많았다고 해야 할까요. 어렸을 때 연극무대에서 잠깐 활동한 이후로 그제서야 제 적성에 맞는 가수의 길로 들어선 것이죠.

3년 정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노래하다가 1988년 저만의 팀을 구성했어요. ‘더 블루’라는 7인조 남성 그룹인데요. 그룹을 이끌면서 서울 나이트클럽에서 음악활동을 해왔습니다.

더 블루가 사랑을 받기 시작하자 2004년 한 선배의 소개로 더 블루 멤버 전원은 일본 도쿄, 가와구치시, 지바현, 오사카, 요코하마 등에서 활동을 할 수 있게 됐고 일본에서 3년 반 동안 노래를 해왔습니다.

귀국 후에는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후배가 운영하던 7080라이브클럽을 인수해 15년 째 운영해오면서 기회가 생길 때마다 클럽 무대에 올라 조항조, 박우철, 나훈아, 남진 등 선배 가수들의 히트곡을 노래했습니다.

가수의 꿈을 갖고서 계속 노래를 한 덕분인지 진성의 ‘안동역에서’ 김병걸 작사가·최강산 작곡가와 연결돼 무대 경력 30년 만에 데뷔 앨범을 만들었었고, 김병걸 작사가와 최강산 작곡가가 만들어 준 ‘고창에서 왔어요’는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답니다.

Q. 앨범은 몇 집까지?

A. 1988년 가요제 옴니버스 앨범을 냈고, ‘기다리는 가슴에’가 타이틀곡입니다.

2017년도에는 1집 앨범이 나왔고요. 타이틀곡은 ‘고창에서 왔어요’인데요. 내 부모·형제와 고향을 그리는 노래,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담은 노래입니다. 그러고 나서 2018년도에 2집 앨범이 나왔어요. ‘검정고무신’과 ‘나 장가가고 싶어’가 담겨 있는 앨범인데요. 2집에서는 ‘나 장가가고 싶어’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혼자서도 행복하다고 거짓말하지 말라는, ‘콧대 높아 시집 못 간 아가씨’ 어디 없느냐, ‘나만 사랑해 줄 아가씨’ 어디 없냐는 간절한(?) 가사를 담은 노래랍니다.

Q. 제일 기억에 남는 행사가 있다면?

A. 팬들과 노래를 함께 할 수 있는 모든 무대와 행사가 제 삶의 이유이자 목적입니다. 무대에 올랐을 때 저를 알아봐 주시고,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고 하시는 모든 부분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에요.

팬분들이 선물도 많이 보내주시는데요. 김치와 특산물은 물론 과일까지 보내주셔서 언제나 감사하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특히 고향에서 하는 행사는 제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데요. 고창 모양성제 행사를 가면 저는 팬들에게 ‘고창의 나훈아’로 불립니다. 모양성제 무대에서 ‘고창에서 왔어요’를 부르면 감회도 새롭고 감격의 도가니로 빠져들더라고요.

Q. 인상 깊었던 관객이나 팬이 있다면?

A. 2018년도에 낸 2집 앨범 수록곡에 ‘나 장가가고 싶어요’라는 곡이 있는데요. 다른 가수의 팬으로 와서 구경하고 계시던 할머니가 제 무대를 보시고는 맘에 드셨는지 제가 결혼을 한 줄 모르고 장가 안 갔냐고 손녀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노래 땜에 처음엔 장가를 가지 않았다고 말씀드렸다가 얼른 사실대로 실토를 한 적이 있답니다.

그리고 제 자랑이지만, 노래교실에서 노래강사님들한테 인기가 많은 편입니다. 전국 노래강사님들에게 사랑받는 가수 김현입니다!

Q. 팬들과 자주 소통하는 편인지?

A. ‘써니야 놀자’라는 팬카페가 있는데요. ‘품바’를 사랑하는 카페입니다. 그 카페 품바님들이 제 팬임과 동시에 저를 많이 도와주고 계세요. 행사가 있으면 항상 저를 불러주시고 챙겨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예요.

또 ‘대한민국 노래강사 1호’로 불리는 송광호 선생님이 저를 많이 도와주세요. 송광호 선생님은 진미령 ‘미운사랑’, 문희옥 ‘평행선’, 김호중 ‘할무니’의 작곡가이십니다.

이 자리를 빌어 이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네요.

저는 ‘가수 김현TV’로 유튜브 활동도 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사랑 받고있는 이 시간이 제겐 큰 영광이자 행복이고 기쁨입니다.

Q. 시인으로 등단했다고 들었다. 시는 어떻게 쓰게 됐는지?

A. 지난해에 ‘그리운 내고향’이란 시로 한국신춘문예에 등단을 했어요.

작사가와 가수 말고도 시인으로도 활동을 하려고 해요.

등단 소식을 접하고 나서 감격의 기쁨을 누리면서 제 인생을 뒤돌아봤습니다.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농촌의 풍경을 놀이터 삼아 자라온 저는 어린 시절 노래와 글쓰기를 좋아했고, 성년이 되어 가수의 꿈은 이뤘으나 마음 한구석은 항상 허전했어요. 바로 문인이 되고 싶은 욕망이었죠.

그래서 노래 가사를 쓰면서 그와 연관된 시를 한 편 두 편 쓰게 됐어요. 그 시를 한국신춘문예 겨울호에 응모하게 됐고, 이렇게 당선이 돼 어릴 때부터 꿈에 그리던 시인이 됐네요.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시인이자 가수로서 ‘좋은 글’과 ‘좋은 음악’으로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저 김현이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Q. 앞으로의 계획?

A. 가수 ‘김현’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리고 많은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싶습니다.

나훈아 가수가 제 롤 모델인데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노력해서 저도 더 큰 무대, 더 큰 사랑을 꿈꾸고 있습니다.

Q. 음악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

A. 별을 딴다는 건 쉽지 않지요. 하지만 쉽지 않다고 해서 노력을 하지 않으면 별을 딸 수 있다는 꿈조차 꿀 수 없습니다.

음악을 좋아하고 사랑하는데에만 그치지 말고, 계속 정진하세요. 그리고 소중한 인연을 계속 만들어 나가세요.

중요한 만남, 중요하지 않은 만남은 없어요. 모든 만남과 인연은 소중하기에 어느 한순간도 헛되게 만나지 말아야 해요. 또 겸손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아발전·실현을 위해서 항상 노력하십시오. 이를 위해선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겠죠.

저도 이 인터뷰를 하고 있는 현재,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며 많이 부족하지만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 다음은 김현이 한국신춘문예에 등단한 '그리운 내 고향'이란 시와 다른 2편의 시다.

 

 

 

박정임 기자 ji860302@naver.com

<저작권자 © 인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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